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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7:14-19 제자들을 위한 기도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다른 복음서는 주님께서 십자가 수난 직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린 기도만 기록하고 있는데, 요한복음은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드린 마지막 기도의 내용을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두 개의 큰 기도 제목을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데, 하나는 하나됨입니다. 이 주제는 첫째 날 주님의 새 계명,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계명을 나누면서 다루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다른 기도 제목을 함께 묵상하려고 합니다. 주님은 14절과 16절 말씀을 통해, 주님이 그러신 것처럼, 구원받은 제자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건 우리가 잘 압니다. 예수님께선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다 이루신 후에는 다시 계시던 곳, 천국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구원받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보니 이해가 됩니다. 니고데모와 대화하시는 중, 예수님께선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태에서 나와서 이 땅의 한 나라에 속한 시민이 되었듯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선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더 재미있는 건, ‘거듭나다’ born again의 again이라는 전치사가 “from above” ‘위로부터, 하늘로부터’라는 뜻도 갖고 있다는 겁니다. 이 두 의미를 합해서 번역하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나다’의 의미가 더 정확해 집니다.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데, 거듭남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받는 선물인 겁니다. 이처럼 소속이 완전히 바뀐 믿음의 성도를 바울은 에베소서 2장 6절에서 예수님과 하늘에 앉아있는 자들이라고 표현했고,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거룩한 나라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말씀대로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인 겁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 구원받은 자들을 미워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이 말씀이 사실이라는 걸 사도행전의 사건들이 증거합니다. 사도행전의 주요 인물 하나인 바울의 삶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선교 사역은 전쟁을 방불케 합니다. 1차 선교 여행 중에는 복음을 대적하는 유대교인들에 의해서 돌에 맞아 죽을 뻔합니다. 2차 선교 여행 중에는 로마의 황제를 숭배하면서 동시에 돈을 사랑하는 로마인의 고발에 의해 채찍을 맞고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당합니다. 3차 선교 여행 때는 우상을 섬기며 우상을 섬기는 자들을 대상으로 비즈니스해서 돈을 버는 자들이 모여 바울을 해하려고 집단 행동을 벌입니다. 3차 선교를 다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땐, 유대인들의 거짓 고소 때문에 살해 위협에 시달리며 2년을 감옥 갇혀 지냅니다. 이 모든 환난의 뒤에는 주님께서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부르신 사단과 악한 영의 세력들의 계략이 숨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실 때도 악한 영의 세력들이 자기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 전부를 이용해서 주님을 대적했습니다. 히브리서 4장은 주님께서 모든 일에 시험을 받으셨다고 증거합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즉 구원을 완성하고 승천하시자, 사단과 그 세력들은 이제 주님의 제자인 우리들을 표적으로 삼아 공격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원받은 백성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과정을 영적 전쟁, 영적 씨름이라고 부릅니다. 아주 적절한 표현입니다. 18절 말씀을 보니, 그런데도 주님은 제자들을 이 위험한 세상 속으로 보낸다고 하십니다. 우리를 십자가 사랑, 그 무한한 사랑으로 사랑하시는 주님이 왜 그렇게 하시는 걸까요? 그 답도 18절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이 말씀이 답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독생자를 이 시험과 유혹이 들끓은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아들 예수가 감당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 세상에 보내신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험이 가득한 세상으로 보내시는 이유는 제자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인 겁니다. 그 사명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 제자들에게 이 전도의 사명을 분명하게 맡겨 주셨습니다. 주님의 마지막 기도에 담긴 큰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이 소명입니다. 제자들이 이 험한 세상 속에서 복음 전파의 소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계신 겁니다. 제자들이 이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내용이 17절과 19절에 있습니다. 제자들을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주님 말씀대로 구분된 삶을 사는 것이 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선 40년 광야 생활 후, 가나안 땅 정복을 위해 여호수아를 제 2의 리더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 정복을 위해 항상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전략을 가르쳐 주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 두려울 일이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즉시 실천했습니다. 요단 강을 건넌 후, 할례를 행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명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구별된 백성이라는 걸 기억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출애굽 후 광야 생활 중 태어난 자녀들에게 할례를 못한 겁니다. 그래서 할례를 명령합니다. 가나안 종족들과 전쟁을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할례를 행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그래도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할례를 행합니다. 자신의 정체성, 거룩한 언약 백성이라는 걸 분명히 하고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을 때, 하나님께선 당신의 군대 장관을 이스라엘에게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거룩함을 지킨 백성들을 승리로 이끄시기 위해 군대 장관을 보내주신 겁니다. 할렐루야!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들을 전도해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가르침을 따라 이 교회 성도들은 세상 속에서 구별된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의 제자로서 하나님 말씀대로 산 겁니다. 그러자 우려할 일이 생겼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크리스찬이라고 부르며 손가락질하기 시작한 겁니다. 크리스찬이란 예수쟁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됐나요? 교회는 더욱 부흥했고, 가장 먼저 로마 전역에 선교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크리스찬이라는 별명을 영광스러운 칭호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해서 구분된 삶을 살아가는 백성들을 승리의 길로 이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 중 하나인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소개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고 적용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우리를 미워하는 악한 세력과의 싸움에서 늘 승리하면서 천국을 향해 전진하는 거룩한 군사들이 다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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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6:7-13 성령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예수님께선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아버지 하나님께 구해서 성령님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떠나고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유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후, 성령님이 이 땅에 오시는 것이 왜 유익한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십니다. 8절을 보면 이 땅에 오신 성령님께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9절부터 11절까지 말씀을 통해 8절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십니다. 주님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들을 깨닫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절씩 볼까요? 9절 말씀은 성령님께서 죄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것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십자가에서 화목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 인간의 죄를 용서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죄는 인간이 에덴에서 추방된 이유입니다. 에덴에서 추방된 후, 인간의 삶은 철저하게 망가집니다. 스스로 진리를 깨달을 수 없는 혼돈의 상태에 빠졌고, 세상의 어떤 것으로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안고 살아야 했고, 절대 극복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절망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죄의 심각성을 전혀 모른 채 살아갑니다. 자신이 죄인인지도 모릅니다. 성령님께선 그렇게 소망 없이 살아가는 자들에게 오셔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그 죄를 씻고 혼돈과 공허와 절망을 털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을 믿는 것밖에는 없다고 가르쳐 주시는 겁니다. 우리 두란노 식구들은 성령님의 이 놀라운 역사로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걸 믿고, 진리 위에서 충만하고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사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10절 말씀은 해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의”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3장 말씀이 “의”에 대한 뚜렷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23절 말씀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를 죄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른다는 건, 하나님 계신 천국에 들어가는 걸 말합니다. 그러니까 천국에 들어가려면 의가 필요하다는 걸 논리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의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아주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구원에서 의의 역할을 알고 나니 본문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 예수님께선 하나님 계신 천국으로 계시는데, 우리도 천국에 가고 싶다면, 예수님 믿고 “의인”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 땅에 오신 성령님께서 이 중요한 진리를 깨우쳐 주신다는 겁니다. 두란노 식구들은 예수님 믿고 의라는 천국 행 티켓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고, 절대 행복 속에서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11절 말씀은 성령님께서 이 세상 임금이 심판 받았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 임금이란 사단을 말합니다. 사단이 이 세상에서 임금 노릇할 수 있었던 건 죄와 사망 때문이었습니다. 사단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해서 죄를 짓게 만들어 하나님과 단절시켜 놓고, 그후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 죄와 사망을 도구로 삼아 인간을 자기마음대로 주물럭거려 온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사단에게 임금이라는 칭호까지 붙여 주신 겁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심으로 사단을 이 세상 임금의 자리에서 끌어내리신 겁니다. 성령님은 이 놀랍고 복된 소식을 택한 백성들에게 알려주시는 겁니다. 두란노 식구들은 예수님 믿고 사탄의 졸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걸 알고, 기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9절부터 11절까지 말씀을 종합해보면, 성령님께선 창세전에 택함 받은 자들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고 깨닫게 하셔서, 그들을 구원의 자리로 이끄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신 겁니다. 우리를 그렇게 구원해주신 성령 하나님께 항상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성령님의 역할은 이게 다가 아닙니다. 너희를, 즉 구원받은 백성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겁니다. 이 역할을 잘 이해하기 위해선 예수님께서 여실 새 언약의 시대를 미리 보여주고 있는 예레미야 31장의 말씀을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선 새 언약의 시대에 일어날 일들 중 하나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모세에게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주셔서 그 율법들을 자기 힘으로 지켜 구원받게 하셨는데, 예수님을 통해 여실 새 언약의 시대, 즉 은혜의 시대에는 아예 하나님의 법을 그들 마음 속에 두고 기록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선 성령님을 보내주심으로 이 약속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율법을 계시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직접 오신 겁니다. 이렇게 오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의 의미를 바로 깨닫게 하시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겁니다. 우리가 할 일은 성령님께서 이 소중한 사역을 하실 때, 내 뜻과 고집을 내려놓고 순종하는 겁니다. 그래야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진리의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함을 이루어, 늘 진리의 자리를 지키는 순종의 삶이 되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4장 18절의 약속 대로, 주님께선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천국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우주에서 가장 든든한 동반자를 보내주신 겁니다. 그런데도 많은 성도들이 성령님을 외면하고 스스로 고아가 되어 엉뚱한 길을 헤매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복을 차버리고 스스로 불행을 떠안고 살아가는 겁니다. 우리 두란노 식구들은 그러지 않길 바랍니다. 진리와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성령님 바로 곁에서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행복하게 동행하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요 15:1-8 참 포도나무와 가지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예수님은 당신을 참 포도나무에 그리고 사람들을 가지에 비유하십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에 “참”자를 붙여서, 이 세상에는 자기에게 구원이 있다고 떠드는 종교들, 가짜 포도나무들이 많이 있으니 그들을 조심하라고 경계하십니다. 정치권과 법이 앞장서서 모든 종교는 평등하고 주장하고, 모든 종교를 마치 상점 진열대의 물건처럼 죽 펼쳐놓고 마음에 드는 걸 고르면 된다고 하는 세상이라, 우리는 진리를 찾는 것이 아주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참 포도 나무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아멘? 오늘 본문의 비유가 담고 있는 핵심 주제는 주님 안에 거하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주님 안에 거해야 하는 이유를 비유를 통해 아주 clear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4절과 6절 말씀에서,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말라 죽어 결국에는 불에 던져지는 것처럼, 사람들도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안에 거하느냐 아니냐는 영원히 사느냐 아니면 영원히 죽느냐를 결정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겁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안에 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예수님께선 오늘 말씀 안에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도 담아두셨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내가 일어준 말로 너희들은 이미 깨끗해졌다.”고 말씀하십니다. 깨끗하다는 말은 정결하게 되었다, 의롭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야 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도 이와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내 음성이란 주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영혼의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는 자들은 주님과 함께 거하는 복을 누리게 된다고 약속해주신 겁니다. 주님의 말씀을 깨달은 바울은 로마서 10장 17절에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다라고 선포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18절에서 주님은 이 구원의 메시지를 더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제가 읽어 드릴께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주님을 믿을 때 구원을 받고, 심판에 이르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이 곧 말씀이시라고 증거하십니다. 즉 말씀을 믿는다는 건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그때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겁니다. 두란노 식구들은 다 말씀이신 예수님을 믿고 참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가 되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내가 믿음으로 고백한 건 맞는데, 이 고백이 진짜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사용하면 이런 질문입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죠?” 예수님을 믿어야 천국에 가서 영생을 누릴 수 있는데, 내 고백이 진짜인지가 궁금한 겁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이런 질문을 품고 구원에 대한 확신 없이 살아가는 분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 분들에게 우리는 어떤 답을 주어야 할까요? 다행히 오늘 말씀에 답이 있습니다. 2,4,5,8절 말씀에 그 답이 있는데, 답은 바로 “열매로 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분명하고 쉽습니다. 당연합니다.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는 포도를 맺습니다. 사과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는 사과를 맺습니다. 붙어있기만 하면 가지는 자연히 열매를 맺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라는 참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 제자들은 어떤 열매를 맺어야 될까요? 그 열매가 자라고 있으면, 예수님을 진짜 믿고 있는 겁니다. 열매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떠오르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갈라디아서 5장 22절과 23절 말씀입니다.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 안에 있다는 말은, 성령님 안에 있다는 말이기도 한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께 진짜 붙어 있으면,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겁니다. 그 열매는 바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이 9가지 열매입니다. 어때요, 우리의 삶에서 이 열매들이 자라나고 있습니까? 아멘? 아멘! 우리 새벽의 성도님들은 다 참 포도 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있는 겁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열매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지 않길 원합니다. 8절 말씀, 즉 열매를 많이 거두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 두란노 식구들은 다 매 순간 성령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가운데, 풍성한 열매를 거두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시는 참 제자의 삶이 되길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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