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RANNUS KOREAN BAPT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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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편지.

2026 부활주일: 하나님 우편에 서신 주님

4/20/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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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은 헬라파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성도였고, 그래서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으로 뽑혀 교회 안에서 주어진 사역에 헌신했습니다. 또한 교회 밖에서는 자신과 같은 출신의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가서 뜨겁게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그러나 헬라파 유대인들은 스데반을 유대교 공회로 끌고 가 예수당이라고 고발합니다.
공회는 약 2년전 예수님을 심문한 그곳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한 가야바였습니다. 그러니 공회의 분위기는 겨울 바람처럼 차가웠을 겁니다. 그런 곳에서 스데반은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태도와 행동을 보여줍니다.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빛이 났습니다. 두려움 없이 평온한 그의 태도는 상식의 잣대로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변론의 기회가 주어지자, 스데반은 담대하게 외칩니다. “너희 조상들은 의인, 메시아가 오실 것을 예언한 자들을 죽였고, 너희들은 예언대로 오신 그 의인 메시아를 잡아 살인하고 말았다.” 예수님을 잡아 죽음으로 내몬 당사자들 앞에서, 너희들이 메시아를 죽였다고 당당하게 선포하고 있는 겁니다. 스데반의 용기는 상식을 초월합니다. 스데반이 마지막으로 증거한 말은 더 충격적입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내가 보노라.” 예수님을 심문할 당시, 공회원들은 주님께서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대답하셨을 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이 지금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시다.”고 증거하고 있는 겁니다. 스데반의 영성은 세상의 잣대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스데반이 이 지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기도도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스데반의 이런 태도와 행동은 오직 예수님의 부활로만 설명이 가능합니다.
먼저 천사처럼 빛나던 스데반의 평온한 얼굴과 변론할 때 보여준 용기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이루어 주신 약속을 대입해야 설명이 가능해집니다. 예수님께선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고, 부활 후 승천하셔서 그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그와 함께 하신 성령님 때문에 스데반은 공회원들 앞에서도 평안할 수 있었던 겁니다. 변론할 때도, 성령님은 예수님의 약속대로 일하셨습니다. “공회에 넘겨주더라도 그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할지 염려하지 말라. 너희 속에 계신 성령님이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실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신 겁니다.  
이번엔 순교를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스데반이 하나님 우편에 계신 주님을 증거하고,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던 행동을 설명해볼까요?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어려운 순간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스데반에게 나타나신 겁니다. 하나님 곁에 서 계신 주님을 본 스데반은, 자신의 믿음이 진짜라는 것을 확인하고 기뻤을 겁니다. 또한 하나님 곁에 서서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계신 모습을 보고,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힘이 났을 겁니다. 또한 스데반은 지금 죽어도 자신이 갈 곳은 주님 계신 저 천국이라는 걸 알고 돌을 맞으면서도 기뻤을 겁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왜 용서의 기도를 하셨는지도 분명히 이해했을 겁니다. 모든 자들이 주님을 믿고 구원받아 주님 계신 천국으로 오길 바라시는 그 마음을 깨닫고, 자기를 돌로 치는 자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겁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하고, 또한 복음을 증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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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나무의 뜻

4/20/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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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은 예수님을 맞으러 온 무리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고 기록합니다. 마태, 마가 복음에서는 나무 가지라고만 기록하고, 누가복음은 아예 나무 가지라는 단어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른 복음서들과는 관점이 다른 요한복음이 종려나무 가지를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성경 전체에서 종려나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지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종려나무는 35번 등장하는데, 그중 19번이나 성전을 장식하는 문양으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성경 학자들은 요한복음의 종려나무 가지를 성전을 장식하는데 사용한 종려 나무와 연결해서 그 의미를 찾아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을 짓는 과정에서 종려나무가 6번 등장하는데, 솔로몬 성전의 청사진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보여주신 겁니다. 에스겔이 환상 중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성전을 묘사하는 중에는 13번이나 등장합니다. 두 경우 다 하나님께서 직접 보여주신 내용인 겁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이 종려나무를 기록하고 있는 이유를 성전과 연결해서 찾고 있는 겁니다.   
솔로몬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를 천사와 종려 나무와 꽃으로 장식하게 하신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께서 계신 곳임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천사와 종려나무와 꽃이 상징하는 것은 하나님 계신 곳 낙원입니다. 제사장들이 직무를 감당하기 위해 성소에 들어서는 순간, 문과 벽에 새겨진 무늬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믿고 경외심을 갖게 됩니다. 요한도 복음서를 읽는 사람들이 종려 나무를 보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길 원하고 있는 겁니다. 사람들이 종려나무를 흔들며 환영하고 있는 예수님이 바로 성자 하나님이심을 깨닫길 원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낙원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길 원하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경외심을 가지고 대하길 원하는 겁니다. 경외의 마음을 두 단어로 풀면 믿음과 순종입니다.
2026년 종려 주일을 맞아 우리 모두 주님 앞에서 이렇게 결단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100% 믿겠습니다. 소명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 뒤를 순종하며 따르겠습니다.
에스겔에게 환상을 통해 보여주신 성전에 새겨진 종려나무와 천사는 어떤 뜻을 갖고 있는 걸까요? 그 의미는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 낙원을 뜻합니다. 그런데 에스겔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와 더불어 아주 큰 의미를 하나 더 품고 있습니다. 그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환상 속 성전의 지성소의 모양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성전과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지성소는 휘장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누구도 그 휘장을 걷고 지성소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담이 죄를 지은 후 인간이 에덴에 다시 들어갈 수 없었듯이 하나님으로 나가는 길이 막혀 있는 겁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회복된 환상 속 지성소 앞에는 문이 달려 있습니다. 휘장은 사라지고 없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던 그때 휘장이 찢어져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환상 속 성전의 문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 10장에서 나는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지성소의 휘장을 걷어 버리신 예수님께서 직접 낙원으로 들어가는 문과 길이 되신 겁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앞에서 다시 한번 결단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믿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하나님 손을 꼭 잡고 낙원으로 이어진 길을 기쁨으로 여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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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주간 새벽 마지막 날

4/9/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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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7:14-19   제자들을 위한 기도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다른 복음서는 주님께서 십자가 수난 직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린 기도만 기록하고 있는데, 요한복음은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드린 마지막 기도의 내용을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두 개의 큰 기도 제목을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데, 하나는 하나됨입니다. 이 주제는 첫째 날 주님의 새 계명,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계명을 나누면서 다루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다른 기도 제목을 함께 묵상하려고 합니다.  
 
주님은 14절과 16절 말씀을 통해, 주님이 그러신 것처럼, 구원받은 제자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건 우리가 잘 압니다. 예수님께선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다 이루신 후에는 다시 계시던 곳, 천국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구원받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보니 이해가 됩니다. 니고데모와 대화하시는 중, 예수님께선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태에서 나와서 이 땅의 한 나라에 속한 시민이 되었듯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선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더 재미있는 건, ‘거듭나다’ born again의 again이라는 전치사가 “from above” ‘위로부터, 하늘로부터’라는 뜻도 갖고 있다는 겁니다. 이 두 의미를 합해서 번역하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나다’의 의미가 더 정확해 집니다.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데, 거듭남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받는 선물인 겁니다. 이처럼 소속이 완전히 바뀐 믿음의 성도를 바울은 에베소서 2장 6절에서 예수님과 하늘에 앉아있는 자들이라고 표현했고,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거룩한 나라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말씀대로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인 겁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 구원받은 자들을 미워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이 말씀이 사실이라는 걸 사도행전의 사건들이 증거합니다. 사도행전의 주요 인물 하나인 바울의 삶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선교 사역은 전쟁을 방불케 합니다.
1차 선교 여행 중에는 복음을 대적하는 유대교인들에 의해서 돌에 맞아 죽을 뻔합니다. 2차 선교 여행 중에는 로마의 황제를 숭배하면서 동시에 돈을 사랑하는 로마인의 고발에 의해 채찍을 맞고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당합니다. 3차 선교 여행 때는 우상을 섬기며 우상을 섬기는 자들을 대상으로 비즈니스해서 돈을 버는 자들이 모여 바울을 해하려고 집단 행동을 벌입니다. 3차 선교를 다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땐, 유대인들의 거짓 고소 때문에 살해 위협에 시달리며 2년을 감옥 갇혀 지냅니다.
이 모든 환난의 뒤에는 주님께서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부르신 사단과 악한 영의 세력들의 계략이 숨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실 때도 악한 영의 세력들이 자기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 전부를 이용해서 주님을 대적했습니다. 히브리서 4장은 주님께서 모든 일에 시험을 받으셨다고 증거합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즉 구원을 완성하고 승천하시자, 사단과 그 세력들은 이제 주님의 제자인 우리들을 표적으로 삼아 공격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원받은 백성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과정을 영적 전쟁, 영적 씨름이라고 부릅니다. 아주 적절한 표현입니다.   
 
18절 말씀을 보니, 그런데도 주님은 제자들을 이 위험한 세상 속으로 보낸다고 하십니다. 우리를 십자가 사랑, 그 무한한 사랑으로 사랑하시는 주님이 왜 그렇게 하시는 걸까요? 그 답도 18절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이 말씀이 답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독생자를 이 시험과 유혹이 들끓은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아들 예수가 감당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 세상에 보내신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험이 가득한 세상으로 보내시는 이유는 제자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인 겁니다. 그 사명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 제자들에게 이 전도의 사명을 분명하게 맡겨 주셨습니다. 주님의 마지막 기도에 담긴 큰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이 소명입니다. 제자들이 이 험한 세상 속에서 복음 전파의 소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계신 겁니다.
 
제자들이 이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내용이 17절과 19절에 있습니다. 제자들을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주님 말씀대로 구분된 삶을 사는 것이 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선 40년 광야 생활 후, 가나안 땅 정복을 위해 여호수아를 제 2의 리더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 정복을 위해 항상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전략을 가르쳐 주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 두려울 일이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즉시 실천했습니다. 요단 강을 건넌 후, 할례를 행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명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구별된 백성이라는 걸 기억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출애굽 후 광야 생활 중 태어난 자녀들에게 할례를 못한 겁니다. 그래서 할례를 명령합니다. 가나안 종족들과 전쟁을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할례를 행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그래도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할례를 행합니다. 자신의 정체성, 거룩한 언약 백성이라는 걸 분명히 하고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을 때, 하나님께선 당신의 군대 장관을 이스라엘에게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거룩함을 지킨 백성들을 승리로 이끄시기 위해 군대 장관을 보내주신 겁니다. 할렐루야!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들을 전도해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가르침을 따라 이 교회 성도들은 세상 속에서 구별된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의 제자로서 하나님 말씀대로 산 겁니다. 그러자 우려할 일이 생겼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크리스찬이라고 부르며 손가락질하기 시작한 겁니다. 크리스찬이란 예수쟁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됐나요? 교회는 더욱 부흥했고, 가장 먼저 로마 전역에 선교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크리스찬이라는 별명을 영광스러운 칭호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해서 구분된 삶을 살아가는 백성들을 승리의 길로 이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 중 하나인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소개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고 적용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우리를 미워하는 악한 세력과의 싸움에서 늘 승리하면서 천국을 향해 전진하는 거룩한 군사들이 다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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