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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문을 들어서면 구수한 음식 냄새가 코끝을 간지릅니다. 감사 넘치는 예배를 마친 후엔, 온식구가 친교실로 내려가 푸짐한 음식을 먹으며 도란도란 정겨운 대화를 나눕니다. 작년까지의 추수감사주일 풍경 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이 사랑의 교제가 통째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교회 식구 모두가 본당에서 그리고 온라인을 통해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가 넘쳐납니다.
하나님께선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걸까요? 성경 속 인물들을 통해 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 행악자는 자신이 죄인임을 자백하고, 주님께 이런 고백과 청원을 드립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 당신의 나라라는 표현에는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이 담겨 있고, “나를 생각하소서”라는 표현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악자의 영혼은 기쁨과 감사로 넘쳤을 겁니다. 잠시 후면 하나님 나라에 있을 거라는 생각에 십자가 고통도 잠시 잊었을 겁니다. 구원받은 행악자를 통해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이유를 발견합니다. 바로 구원의 은혜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우주에서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구원의 상자 안에는 죄 사함,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 등 놀라운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극한 상황도 하나님의 이 무한한 은혜를 이길 순 없는 겁니다. 욥은 하루 아침에 모든 재산과 사랑하는 자녀들을 다 잃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겪은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인간은 결코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를 욥은 겸손하게 받아들인 겁니다. 또한 욥은 하나님의 섭리가 선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 시련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 자신의 믿음이 정금과 같이 순수하고 견고해질 것을 확신한 겁니다. 그래서 욥은 그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릴 수 있었던 겁니다. 욥을 통해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두 번 째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로마서 8장 28절 말씀을 사용해서 정리해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항상 선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잊지 않는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넉넉히 감사할 수 있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한 촌에 들어가셨을 때, 열 명의 문둥병자들이 자기들을 긍휼히 여겨달라고 온힘을 다해 소리쳤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치유함 받은 열 명 중 딱 한 사람, 즉 사마리아인만 주님께 나와 감사를 드립니다. 이때 주님께선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출신 문둥병자를 통해 주시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감사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물에 빠져 죽을 뻔 한 사람을 누군가가 건져주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사람은 은혜를 갚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온전히 감사하는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예배자가 되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실천하는 일을 기뻐하며, 주님의 뜻에 순종해서 교회를 세우는 일에 헌신하고, 세상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며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가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100% 감사를 삶 전체로 끊임없이 찬양하는 진실한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 준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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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기도문의 마지막 청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를 묵상합니다.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에는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같은 뜻을 지닌 내용을 반복함으로 이 청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사탄의 시험이 뭐라고 주님께선 이 기도 내용을 강조하고 계신 걸까요.
시험의 특징은 3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인간이라면 누구나 시험을 받습니다. 100%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도 시험을 피할 수 없으셨습니다. 둘째 사탄의 시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탄이 지닌 능력 중 하나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할 수 있는 힘이라고 합니다. 참과 거짓의 경계를 흐려놓고 유혹하면 대부분이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우리의 힘과 지혜로는 사탄의 시험을 이겨낼 수 없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사탄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동사의 시제를 주의깊게 봐야 합니다. 사탄이 사자처럼 포효하고 어슬렁거리며 삼킬 자를 찾고 있는 동작이 다 지속을 표현하는 현재형인 겁니다. 사탄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쉼없이 삼킬 자를 찾아다니고 있는 겁니다. 사탄의 시험은 이처럼 무섭습니다.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이 모든 시험을 다 경험해보신 주님은 그래서 기도문 안에 시험에 대한 청원을 넣어두고 강조하신 겁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고 기도 드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이런 류의 질문이 어리석어 보일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만큼 다양한 도구를 가지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탄의 시험을 이기는 방법만큼은 성경에 명확하게 기록해두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0-18절 말씀입니다. 이 편지를 쓴 바울은 로마 전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시험과 유혹을 경험했을 겁니다. 그 강력한 시험과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바울은 수시로 기도했을 겁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께 받은 응답을, 모든 성도가 알 수 있도록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기록해둔 겁니다. 이 편지에서 바울은 사탄의 시험에 대적하는 것을 영적 씨름이라 부르고, 이 씨름에서 이기는 방법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는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머리는 구원의 확신을 뜻하는 투구로, 가슴은 구원받는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의로움의 흉배로, 허리는 겉과 속이 같은 진실한 삶의 띠로, 한 손은 믿음의 방패로, 다른 손은 말씀의 검으로, 그리고 발은 복음을 전하는 신으로 무장되어 있기만 하면, 어떤 시험이 와도 이길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 후 바울은 아주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는 방법 입니다. 기도 입니다. 사탄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험과 유혹으로 공격하듯이, 우리도 항상 깨어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는 겁니다. 기도할 때, 성령님이 우리의 머리와 가슴과 허리와 양손과 발을 영적 무기로 무장시켜주신다는 겁니다. 정리합니다. 사탄의 시험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 시험은 너무 강력해서 우리의 힘과 지혜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또한 시험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공격해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시험을 이기는 길을 발견했습니다. 주님 가르쳐주신 대로 항상 깨어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때마다, 우리의 온 몸을 당신의 전신갑주로 무장시켜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어떤 시험을 만나도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대하는 믿음의 용사들이 다 되시길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이 준 목사 드림 오늘은 주기도문 중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해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이 부분을 묵상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해준 것같이” 이 내용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부담스러워합니다. 주님께서 왜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고 또한 용서할 수 있는 방법도 안다면 부담을 덜 수 있을 겁니다.
먼저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이 기도 내용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화평을 유지하는데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수난을 통해 이루신 화평은 십자가의 형상이 말해줍니다. 수직의 화평,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평, 그리고 수평의 화평, 즉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평을 이루신 겁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목,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목을 가로막고 있던 죄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신 겁니다. 그렇게 이뤄놓으신 화평 중 가장 깨지기 쉬운 화평이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평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한복음 17장이 기록해둔 마지막 기도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제자들의 하나됨을 위해 간구하셨던 겁니다. 우리 주님은 그렇게 교회 공동체의 화평을 위해 희생하셨고, 또한 그 화평을 위해 기도하신 겁니다. 그런데 교회 공동체의 화평을 깨는 주범이 바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인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생긴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이 바로 용서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용서를 하나님께 간구 드려야 할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께 회개 기도 드릴 때 반드시 먼저 이뤄야 할 조건으로 못박아 두신 겁니다. 이제 이유를 아셨으니 주님의 십자가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용서에 힘쓰는 자가 되길 바랍니다. 자 이번엔 용서의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첫번째 길은 예수님의 비유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임금으로부터 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종이 있습니다. 한 달란트의 가치가 지금 돈으로 약 16만 달러 정도니까, 비유를 듣는 제자들에게 만 달란트는 상상으로도 가늠이 안 될만큼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주님께서 만 달란트의 빚을 비유에 사용하신 의도는 종이 임금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무한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그 종이 집으로 돌아가다가 자기에게 100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자 멱살잡이를 하며 갚으라고 다그칩니다. 100데나리온은 종이 탕감받은 빚의 50만분의 1에 불과한 아주 적은 돈입니다. 빚진 자가 사정사정 했지만, 종은 다짜고짜 그를 끌어다가 자기 집 옥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갚기 전엔 나올 수 없다는 겁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임금은 진노하여 당장 그 은혜를 모르는 종을 잡아다가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옥에 가두라고 명령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무한한 은혜만 잊지 않으면 용서 못할 일이 전혀 없는 겁니다. 두번째 길은 은혜의 시대를 사는 성도들에게 주신 새언약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새언약의 첫번째 내용을 의미적으로 해석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함께 하신다는 겁니다. 이렇게 오신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베소서 5장과 6장은 성령 충만한 자의 삶을 그리고 있는데, 그 첫번째가 교회 안에서 서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화답하는 장면 입니다. 성령 충만한 자들이 모인 교회는 수평적 화평을 누리고 유지해가는 겁니다. 용서해야 할 일은 아예 잘 생기지도 않고, 그런 일이 생긴다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함께 하신 성령님께서 용서할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과의 화평, 성도들 사이에 화평이 넘치는 곳이어야 합니다. 주님은 이 화평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 위에서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이 분명한 사실을 기억하고, 섬기는 교회의 화평을 위해 용서를 용기있게 실천하는 주님을 꼭 닮은 삶이 되길 바랍니다. 이 준 목사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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