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RANNUS KOREAN BAPT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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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편지.

마태복음 2:1-11

12/27/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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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박사들이 예수님께 드린 진짜 선물은 뭘까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연결해서 묵상하다 보면, 박사들이 주님께 드린 참 선물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선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 주십니다. 꿈을 통해서 또는 이상을 통해서 또는 천사들을 통해서 또는 직접 임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시는 겁니다. 박사들에게는 특별한 별을 보여주심으로 이 땅에 메시아가 탄생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박사들이 하나님의 이 특별한 계시를 믿었습니다. 그 확고한 믿음 때문에 메시아를 만나러 가는 긴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한 겁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면, 박사들이 계획하고 실천에 옮긴 여행은 믿음 없이는 절대 시작도 할 수 없는 대장정이었습니다.    
먼저 거리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성경 학자들에 따르면 본문의 동방은 과거 바벨론과 페르시아가 있던 지역을 말합니다. 그곳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900마일에 이르는 아주아주 먼 거리였습니다. 에스라 7장은 바벨론 때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 4,000여명이 2차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이때 정월 초하루 바벨론을 떠나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도착했다고 기록합니다. 무려 4개월이나 걸린 겁니다. 이처럼 꽤 긴 거리인 겁니다. 그러니 그 긴 여행을 위한 준비가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동방 박사들은 유대 땅에 왕이 나셨다는 믿음으로 거리의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더 큰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당시, 파르티아라는 왕국이 동방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문헌에 따르면 그 나라에선 박사라는 지위가 꽤 중요했습니다. 나라의 브레인으로서, 왕의 통치를 돕는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중요한 자리를 오랫동안 비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실제로 왕을 설득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박사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예수님은 이미 아기가 아니라 어린이였습니다. 헤롯 왕이 박사들이 별을 본 때를 계산해서 2살 밑의 아이를 다 죽였다는 사실을 통해, 당시 예수님의 나이가 2살 정도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까지의 여행 기간 3-4개월을 감안할 때, 아무리 적게 잡아도 왕을 설득하는데 약 8, 9개월의 시간이 걸린 겁니다. 그래도 박사들은 메시아 탄생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결국 왕으로부터 허락을 받아낸 겁니다.   
가장 큰 장애물은 당시 정치적 상황이었습니다. 국경 문제로 파르티아 왕국과 로마 제국이 계속해서 분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나라 사이의 싸움은 약 600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고자 하는 예루살렘은 로마 제국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메시아를 만나기 위해선 적국의 땅으로 들어가야 하는 겁니다. 게다가 박사들은 파르티아의 지도층입니다. 그러니 이 여행은 맨 몸으로 지뢰밭에 뛰어들어가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박사들은 포기하지 않고 끝내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 메시아가 계신다는 견고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 말씀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증거합니다. 1절에선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또한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정의합니다. 주님 안에서 현재 소망하고 있는 것들이 장차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이고, 또한 당장 볼 순 없지만 그것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증거할 수 있는 것이 믿음이라는 겁니다. 동방 박사들이 주님께 드린 선물이 바로 이 믿음 입니다.  
2020년 성탄절을 맞는 우리들도 믿음이 회복되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주신 구원을 분명히 믿고 목적지 천국을 향한 여정을 흔들림 없이 달려가 멋지게 마무리하는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이 준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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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1:27-22:1

12/20/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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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바울은 교회 장로들의 권면을 받아들여 결례를 행하고 있었습니다. 선교하는 동안 바울이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가르쳤다는 소문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섭니다. 그런데 결례가 끝나갈 무렵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오순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에베소에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이 드로비모라는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왔다고 거짓으로 무고한 겁니다. 성전에는 이방인이 절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성전 문 앞에는 이방인이 읽을 수 있도록 경고판을 세워두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성전을 둘러싸고 세워진 바리케이드를 넘어서 안쪽으로 들어올 수 없다. 이 경고를 무시하고 성전 안쪽에 침입한 자는 예외 없이 죽음으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이 경고를 어기면 로마 시민이라 할지라도 죽는 겁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룰을 깼다고 하니 성전이 발칵 뒤집힌 겁니다. 이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드로비모가 누군지 궁금해졌습니다. 추적해보니, 다행히 성경은 이 인물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담고 있습니다.    
처음 그의 이름이 등장한 곳은 사도행전 20장 입니다. 바울이 3차 선교를 마치고 에베소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함께 한 일행이 7명이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바로 드로비모 였습니다.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은 두 가지 의미에서 중요했습니다. 하나는 기근으로 힘들어 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의 교회가 헌금한 예물을 안전하게 운반해서 잘 전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루살렘 방문 후의 사명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중요하면서도 위험한 사명을 함께 할 동역자를 뽑는 일에 바울은 신중했을 겁니다. 하나님께 깊이 기도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일행 중 한 사람으로 드로비모가 선택된 겁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 드로비모가 어떤 인물인지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동안 예수님을 만난 드로비모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후 바울을 도와 에베소를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지도록 헌신한 일군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에베소에서 온 유대인들이 드로비모를 한눈에 알아본 겁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의 사역을 방해한 그들에겐 바울과 함께 복음 전파에 충성을 다한 드로비모도 눈엣가시였을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그의 이름이 등장한 곳은 디모데후서입니다. 마지막 장 마지막 부분에서 바울은 드로비모가 병이 들어서 밀레도에 두고 왔다고 말합니다. 바울의 이 짧은 언급에도 드로비모에 대한 풍성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순교하기 직전, 약 67년경 로마 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그러니까 드로비모는 바울을 통해 주님을 만난 후부터 바울이 사역을 마치는 순간까지 약 15년 동안 꾸준히 바울을 도와 주님의 일에 헌신한 정말 충성스러운 일군이었던 겁니다. 그래서인지 바울의 글에서 병 때문에 드로비모와 떨어지게 된 것을 참으로 아쉬워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특히 로마 감옥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고 있는 때에 더 생각날 정도로 드로비모는 바울에게 참으로 큰 힘이 되어준 훌륭한 동역자였던 겁니다. 
주님께선 드로비모의 삶을 통해 구원받은 믿음의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그건 바로 주님께서 묶어 주신 동역자들과 함께 끝까지 변함없이 주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겁니다. 이 시대에도 주님께선 믿음의 성도들을 지역 교회를 통해 동역자로 묶어 주셨습니다. 이제부터 그 동역자들과 함께 한 마음이 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힘과 위로를 주며 두란노 침례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일에 끝까지 변함없이 헌신하길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시카고의 교회들이 드로비모와 같은 일군들로 넘쳐나길 바랍니다.               
​                                
이 준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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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1:15-26

12/13/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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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선교 여행 후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장로들과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눕니다. 이때 보여준 바울의 영성은 큰 교훈을 줍니다. 
장로들에게 선교 보고할 때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선교의 주어는 하나님이시고, 자신은 하나님의 도구였다고 고백합니다.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 바흐는 바울을 닮은 인물이었습니다. 바흐는 성경 내용을 주제로 칸타타, 수난곡, 오라토리오 형식으로 수 많은 곡들을 작곡했는데, 악보의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에 특별한 이니셜을 남겼습니다. 첫 페이지 왼쪽 맨 윗부분에는 “J.J.”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 오른쪽 맨 아랫부분에는 “S.D.G.”라고 써넣은 겁니다. “J.J.”는 라틴어 “Jesu Juva”의 준 말로 “예수님 도와주소서”라는 뜻이고, “S.D.G.”는 “라틴어 “Soli Deo Gloria”의 준 말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라는 뜻입니다. 다른 형식의 곡들에선 “I.N.J”라는 이니셜이 발견되는데, 라틴어 “In Nominee Jesu”를 줄인 말로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뜻입니다. 바흐는 곡을 쓸 때마다 주님께 도움을 구했고, 곡을 마치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림으로, 작업의 전과정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했던 겁니다. 그래서인지 바흐의 작품들에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 사랑과 은혜가 가득합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영광드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장로들과의 대화에서 바울은 교회와 성도들을 먼저 생각하는 영성을 보여줍니다. 바울의 선교 보고를 듣고 난 후, 장로들은 그들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교회에는 아직도 율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대인 성도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이 바울에 대해서 나쁜 소문을 들었다는 겁니다. 선교지에서 유대인들에게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가르쳤다는 겁니다. 그래서 분위기가 아주 안 좋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도 제안합니다. 장로들의 해결책은 평소 바울이 문제를 대하고 푸는 방식과는 달랐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장로들의 의견을 수용했습니다. 바울은 교회와 장로들을 먼저 돌아보기로 결심한 겁니다. 자기 때문에 교회가 시끌시끌한 상황을 오랫동안 겪으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왔을 장로들의 입장을 이해한 겁니다. 바울은 교회도 생각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스데반의 순교 이후 유대교인들의 박해를 받으며 성장해왔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자기 식대로 문제를 풀겠다고 나서면, 분명 교회는 바울을 지지하는 세력과 바울에 대해 오해를 품고 있는 세력으로 나뉘어 갈등하게 될 겁니다. 바울은 교회가 한 번 분열이 되면 얼마나 해결이 어려운지 고린도 교회를 통해 이미 겪어보았습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겠다고 교회와 성도들을 어려움 속으로 밀어 넣을 수 없었던 겁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 말씀처럼 자기 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들의 일을 먼저 돌보는 겸손과 배려의 삶을 실천한 겁니다. 존 울맨은 퀘이커 교인이었습니다. 존은 흑인 노예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성경 말씀을 어기는 행위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교인들이 흑인을 노예로 부리고 있었던 겁니다. 이 문제를 교단에 제기했지만 어떤 안건이든 만장일치로 결정하는 교단의 정책 때문에 부결되고 말았습니다. 존은 오랫동안 누려왔던 노예 제도의 편리함을 하루 아침에 포기하지 못하는 형제들의 마음을 이해했습니다. 그 이해 위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3개주를 순회하며 형제들을 일일이 찾아가 일대일로 노예 제도의 부당함을 설득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1783년, 퀘이커 교단은 가장 먼저 미국 의회에 노예제 폐지 요구안을 정식 제출했습니다. 남을 먼저 배려한 존의 개혁 운동은 오랜 시간이 결렸지만, 교단의 갈등없이 더 완전한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겁니다. 
범사에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이웃을 배려하는 삶은 신앙의 기본 덕목 입니다. 

이 준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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