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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로마서 첫 부분에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모든 성도들이 잊어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진리들을 보여줍니다.
그 중 하나가 우리가 복음을 위해 구별된 성도라는 사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모든 제자들에게 위임해 주신 소명입니다. 위임이라는 단어를 통해 이 소명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 공생애 기간 중 당신이 직접 하시던 이 소중한 일을 우리에게 맡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위임이라는 단어 안에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신뢰도 담겨 있습니다. 우리를 믿고 턱 맡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들에게 이 귀한 소명을 리마인드 해주고 있는 겁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맡겨 주신 이 귀한 소명을 실천하기 위해 헌신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복음 증거의 사명을 최우선에 두고 살았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후, 예루살렘 교회는 위기를 맞습니다. 유대교인들이 얼마나 혹독하게 박해를 했는지, 교회 리더들을 빼고는 성도 대부분이 예루살렘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로마 전역으로 흩어진 성도들은 피해 간 지역에서 정착하기도 전에 복음을 증거했다는 겁니다. 복음 때문에 스데반이 죽었고, 자신들도 견디기 어려운 박해를 당하고 쫓겨났지만, 자기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를 멈출 수 없었던 겁니다. 또한 구원을 모르는 자들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 성도들은 낯선 땅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지금도 그렇게 복음에 헌신하는 자들이 지구촌 곳곳에 있습니다. Nathan Barlow는 의사가 된 후 이디오피아에 선교사로 나가 그 나라의 복음화를 위해 평생 헌신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치아가 약해진 선교사님은 치료를 위해 미국에 다시 와야만 했습니다. 이때 자신을 치료하는 치과 의사에게 자신의 이를 전부 뽑고 틀니를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난처해진 치과 의사는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제가 미국을 방문하고 있는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내 치료를 받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고, 더 안타까운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접하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난 선교지로 갈 때, 내 시간 전부를 오직 그들을 치료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쏟아붓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런데 약해진 치아 치료를 위해서 미국을 드나들어야 한다면, 그건 참을 수 없는 시간 낭비입니다. 그러니 제 이를 이번에 다 빼고, 틀니를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과 Nathan 선교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도전은 받지만, 마음 속으로 난 다른 건 해도 전도는 못해 하고 선을 긋고 계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의외로 많은 성도들이 전도를 뛰어넘을 수 없는 심리적 장벽처럼 대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딱 한 번만 전도해 보면, 그 장벽은 스르르 무너지고 맙니다.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교회에서 전도팀을 꾸려서, 공항 전도를 나갈 때, 전도가 첫 경험인 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전도를 경험하고 나자, 그 다음부터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리고 기뻐서 전도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첫 걸음만 떼면 되는 겁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를 복음을 위해 구별된 자들로 세우셨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러니 심리적 장벽을 깨고, 복음 전하는 사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우리를 도구로 삼아 하나님 나라의 지경이 확장해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직접 체험하며 무한 기쁨을 누리는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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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로마서 첫 부분에서 모든 성도는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하며, 이 공통 분모 때문에 같은 신분을 지니고 있다고 선포합니다.
먼저 우리는 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합니다. 예수님께 100% 순종하는 자라는 겁니다. 바울도 처음부터 100% 예수님의 종으로 산 건 아니었습니다. 선교하는 과정을 통해, 특히 2차 선교 중 두 개의 큰 사건을 통해 주님의 뜻에 100% 순종하는 종으로 바로 서게 됩니다. 하나는 자신의 뜻을 앞세워 바나바와 심하게 다투고 헤어진 사건입니다. 이때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 묶어 주신 최상의 파트너인 바나바와 결별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통해, 바울은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되었을 겁니다. 두번째 사건은 자신의 계획을 막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 겁니다. 바울은 2차 선교의 목적지를 아시아로 정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길을 막으시고, 자신을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이끄신 겁니다. 이 사건을 통해, 바울은 하나님의 계획 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되었을 겁니다. 이들 사건 후 바울은 주님의 온전한 종으로 변화됩니다. 바울의 변화를 증명해주는 사건이 2차 선교 직후에 일어납니다. 2차 선교를 다 마치고 돌아오는 중, 에베소에 들렀을 때, 그곳 사람들이 바울을 붙잡았습니다. 복음을 더 전해달라는 겁니다. 2차 선교 목적지가 원래 아시아였고, 에베소는 아시아의 중심 도시라, 이전 바울 같으면 기회라 생각하고 그곳에 남아 당장 선교 사역을 시작했을 겁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라면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하고 떠났습니다. 그들의 요청에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묻고, 지금은 아니라는 답을 듣고 주님의 뜻에 순종한 겁니다. 바울은 주님의 온전한 종으로 변화되었던 겁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스토리를 들으면, 우리는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삶의 현장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가 참 어려운 상황들을 만나게 되고, 그 앞에서 쉽게 넘어지곤 합니다. 왜 그러는 걸까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무한한 은혜를 잊어버리기 때문에, 세상이 더 크게 보이고 결국은 세상의 위협에 굴복하는 패배자가 되고 마는 겁니다. 구원의 은혜를 잊지 않을 때,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죄로 철저하게 망가져서 무기력하게 멸망의 길로 가고 있던 나를 예수님께서 불러주지 않으셨다면…생각만 해도 끔찍한 겁니다. 그래서 감사가 넘쳐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향한 감사함이 넘치게 되면, 우리는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을 살려고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또한 구원의 은혜를 품고 살면,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 내게 최선의 길이라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생명을 내어 주시면서까지 구원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주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끄실 리가 없는 겁니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주님 뜻에 기쁨으로 순종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은혜를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최선의 길로 인도하고 계신 예수님께 감사와 기쁨으로 순종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바울처럼 빛과 소금이 되어 사는 복된 삶이 되길 바랍니다. 로마서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완벽하게 정리 놓은 복음서입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삶에 아주 큰 영향을 주었고, 지금도 주고 있으며 앞으로도 주게 될 겁니다.
386년 여름 어느 날, 한 청년이 친구의 정원에 앉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친구가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님께서 놓으신 생명과 진리의 길 앞에서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길로 가고는 싶은데, 지금까지 즐겨온 세상의 쾌락이 청년의 발목을 잡고 놔주질 않는 겁니다. 그날도 친구와 함께 복음을 두고 대화하는 중, 그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서 깊이 고뇌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때 정원 밖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청년의 귀에 들려왔습니다. “tolle lege, tolle lege” “집어 들고 읽으라, 집어 들고 읽으라”는 말입니다. 청년은 무엇에 홀린듯, 친구 옆에 놓여있던 성경을 집어 들고 펼쳐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로마서 13장 13절과 14절의 말씀입니다. 이 짧은 말씀을 대하는 동안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청년은 후에 자신이 쓴 고백록이란 책에서 그때의 순간을 이렇게 기록해 두었습니다. “난 더 이상 읽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말씀을 읽고난 순간 곧바로 내 마음 속으로 환하게 밝은 빛이 흘러들었고, 그 빛이 내 의심의 구름을 다 몰아내고 말았습니다.” 성경에 대한 깊은 연구로 교회사에 크고 선한 영향을 준 어거스틴이 새롭게 거듭난 순간입니다. 1513년 8월, 한 신부가 비텐베르그 대학에서 성서학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당시 신부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며 고해성사와 고행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죄를 뿌리뽑지 않고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의 삶을 100% 무죄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시편을 강해하던 어느 여름 날, 신부는 시편 31편을 연구하다가 1절,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라는 말씀에 시선을 멈추게 됩니다. 나를 구원하는 건 죄의 고백과 고행이 아니라, 주의 의라는 말씀에 큰 충격을 받은 겁니다. 이 말씀의 뜻을 찾기 위해 성경을 더 깊이 연구하던 신부는 그 답을 로마서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로 1장 17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 중, 그동안 풀리지 않던 답을 얻게 되었고, 신부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이때의 감동을 신부는 자신이 쓴 책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중에, 하나님의 의는 그분의 은혜와 자비를 사용하셔서 우리가 믿기만 하면 우리를 의롭다고 만들어주시는 바로 그 의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깨달음이 임한 후, 나는 다시 태어나게 되었고, 낙원으로 난 문을 열고 들어선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몽땅 새롭게 깨달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은 제게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주었습니다.” 바로 마르틴 루터가 복음이 왜 하나님의 은혜인지를 깨닫게 된 순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걸 확실히 믿게 된 루터는,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루터는 1517년 10월31일 95개 항목이 든 반박문을 비텐베르그 대학 정문에 붙였고, 이후 종교개혁에 앞장서게 됩니다. 로마서를 읽고 깊이 묵상하면서, 우리도 변화의 바람을 체험하게 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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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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